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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회피가 습관이라면? 방어기제로 보는 내 마음

by 수잔0620 2025. 6. 15.

우리 모두는 때때로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속상함, 수치심, 분노, 두려움 같은 감정은 너무 강렬해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감정을 돌려 말하고, 묻어두고, 외면하고 넘깁니다.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의 작용입니다.

 

감정을 회피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사실은 자기 보호를 위한 본능적인 기제에 가깝습니다. 다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계속해서 감정을 회피하기만 한다면 내면의 정서 에너지가 쌓이게 되고, 나도 모르게 관계나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감정 회피의 대표적인 방어기제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지켜주는 동시에 제한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감정 회피가 습관이라면? 방어기제로 보는 내 마음

 

감정을 감추는 기술, 억압

억압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질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어기제입니다. 특히 불쾌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ex. 분노, 죄책감, 수치심, 슬픔)일수록 우리는 그 감정을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고 의식하지 않으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화가 나도 '이건 화낼 일이 아니야'라고 느끼며 자동적으로 그 감정을 눌러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억압은 학습된 정서 반응이기도 하며, 오랜 시간 동안 내면에 습관처럼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억압이 자기 통제력이나 정신적 안정감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억압된 감정은 흔히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반복되는 두통이나 피로, 위장장애 같은 신체 증상 감정의 맥락과 관계없는 울분이나 분노 폭발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나 공허함 또한 억압은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상대와의 갈등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기 어렵고, 감정적 친밀감 형성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억압된 감정을 의식의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지?', '내가 지금 뭘 느끼고 있는 거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감정에 이름을 붙이려는 연습은 억압을 풀고 마음을 회복하는 데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 됩니다.

 

작은 감정이라도, 그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마음은 조금씩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려울 때, 부정

부정은 방어기제 중에서도 가장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반응 중 하나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느끼거나 믿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건 단순히 아닌 척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스스로도 진심으로 믿는 수준으로,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거부하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아직도 어디선가 살아 있을 거야'라고 느끼는 초기 애도의 반응, 큰 실수나 실패를 하고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라고 믿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부정은 사실 심리적으로는 쇼크를 완충하는 장치입니다. 감정적 충격이 너무 커서 바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할 때, 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이 방어기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상황은 변화하지 않고, 감정은 점점 더 억눌려 누적됩니다. 예를 들어 관계가 분명히 멀어졌는데도 여전히 우리 사이는 괜찮다고 믿고 아무런 대화를 시도하지 않거나, 건강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괜찮겠지 라고 넘기는 경우, 결과적으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부정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면 따라올 감정적 무게(슬픔, 죄책감, 불안, 후회)가 두려워 현실 자체를 밀어내는 거죠. 하지만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지나가는 경험은, 오히려 마음의 회복력을 키워줍니다.

 

작은 시작은 '혹시 내가 지금 외면하고 있는 감정이나 상황이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건 용기이자 성장입니다. 그것은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다시 세우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타인을 거울 삼아 감정을 외면하는 투사

투사는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나 충동, 혹은 내면의 불안을 타인에게 넘겨씌우는 심리 방어기제입니다. 쉽게 말해, 내 안의 감정을 마주하기 힘들 때, 그 감정을 남이 가진 것처럼 느끼고 해석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보다 더 나은 성과를 냈을 때 나도 모르게 질투심을 느꼈다면, 그 감정이 불편해서 '쟤는 나를 경쟁 상대로 여겨서 일부러 자극하는 거야'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투사는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문제처럼 느끼게 해주는 안전한 통로 역할을 합니다.

투사가 자주 일어나는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자존감이 흔들릴 때 - 내 감정이나 능력을 직면하는 것이 괴롭거나 두려울 때, 상대방에게 원인을 돌림으로써 자존감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 감정 표현이 억제된 환경에서 자랐을 때 -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탐색하는 경험이 적었다면, 감정 자체를 외부에서만 보게 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 상대가 나의 그림자일 때 -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억눌린 감정과 충동이 그림자처럼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억압한 감정을 타인을 통해 더 쉽게 인식합니다.

물론 투사는 단기적으로는 자기방어에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타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 오해, 신뢰 부족으로 인해 관계에 금이 가기 쉬워집니다. 또한, 감정을 외부로만 돌리는 과정에서 자기이해의 기회도 놓치게 되죠.

 

투사를 인지하는 작은 연습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저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내 안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자기 감정의 주인을 다시 찾으려는 이 질문은, 투사의 벽을 허무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투사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감정과 관계 모두를 더 건강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스스로를 속이게 되는 심리, 합리화

합리화는 우리가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이 내 탓이라는 것을 직접 인정하기 어려울 때 자주 등장하는 방어기제입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며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이죠. 쉽게 말해, 내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상황을 바꿔 해석하면서 마음의 불편함을 줄이는 심리입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사실 그 시험은 내가 진짜 원하던 게 아니었어”라고 말하거나, 연인과의 갈등에서 상처를 준 뒤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저 사람도 변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방식은 내면의 죄책감, 수치심, 무기력감 등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합리화는 특히 자존감이 위협받을 때 강하게 작동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유지하고 싶어 하죠. 그 이미지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변명과 설명이 무의식적으로 동원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합리화가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로막는다는 점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만, 반복되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바꾸기 어려워지고, 잘못된 패턴이 계속되기 쉽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에서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랬어”라고만 여긴다면, 관계의 균열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건강한 자기 방어와 자기 기만은 한 끗 차이입니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이런 질문입니다: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혹시 내가 인정하기 어려워서 다른 이유를 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처럼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은, 합리화의 벽을 허물고 자기를 더 깊이 이해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회피하는 것도 마음의 언어입니다

감정을 회피한다는 건, 그만큼 그 감정이 크고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방어기제는 내 마음이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무의식의 전략입니다. 비난하거나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피하려고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감정 회피는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그 감정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는지를 듣는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